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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26사로 본 조선통사 [하권] / 최두환 편역
 
분류 전자책 > 역사
등록일 2022년 07월 07일 판매자 tchoydh
구매 (결제미결건 포함) 5건 조회수 448회
자료번호 #0002038 가격 5,000원
키워드 : 최두환, 26사, 조선통사,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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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사로 본 조선통사 [하권] 
최두환 편역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과거에 어떤 사실이 있었더라도 역사가에게 알려져 끊임없이 대화하여 상호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유물이든 문헌이든 마찬가지이다.
  『24史』라느니, 『26史』라느니, 고종황제 건륭 때에 그토록 까다롭게 선정하여 최종결정을 거쳐 엮어 묶었던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라고 한들, 그 어떤 이름난 흔한 사실도 낱낱의 그 자체로서는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말하자면 역사를 다룸에 있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장님, 청맹과니가 되어서는 아니 되며, 그물코를 잡기보다는 벼리를 잡아채며 끌어야 한다.
  각각의 알맹이를 걸러내며, 중복된 것을 빼고, 앞뒤를 바로잡으면서 역사의 원형으로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위대한 조선’을 위하여 자신만의 가치를 하나로 엮어내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때 별처럼 반짝였던 한헌석‧박재형‧서우성과 함께 마주 앉아 텍스트를 잡고 천산을 넘고 지중해까지 진격하며 씨름했던 날들이 벌써 15년을 넘겼다. 그 별들은 생계에 바빠 이제는 연락마저 뜸하다. 아무리 진실의 꼬리니, 뿌리까지 덜미를 잡아도 그 노력의 반대급부가 손에 쥐어지지 않으니 무력감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진흙탕에 빠진 진주 같은 진실을 버려둘 수가 없었다. 역사에도 그런 진주가 있다. 말하자면 맨 먼저 꺼내고 싶은 말이 있다. 알 듯 모를 듯 보고도 애써 외면하며 지내온 것으로서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125장으로 읊은 『용비어천가』의 맨 첫 장에 나오는 “해동海東”이 되는 이유가 ‘발해渤海‧渤澥의 동쪽’이기 때문인데, 그 발해가 동해이니 어떻게 맞는 말인가를 생각해볼 일이다. 다시 생각하면 그것이 정작 ‘동해의 동쪽’이 되어 얼핏 생각하면 어불성설이다. 한반도로 치면 동해의 동쪽은 태평양 바다뿐이기 때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상식의 현실이지만, 동해를 ‘Ostsee’라고 부르는 ‘Baltic Sea’로 건너 가보면, 결국 발틱해가 발해(=동해=Ostsee)가 되어 발틱해 동쪽의 대륙이 해동海東이고, 그것이 조선이 되는 것이며, 역사의 진실을 건져내는 벼리이다.
  조선을 말하면서 발틱해라니 어리둥절할 것이다. 이것이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러면 한번 보자. 제소남齊召南이 지은 『수도제강水道提綱』이 『흠정사고전서』와 한치윤의 『해동역사』에도 실려 있는 조선의 강역은 위도는 차치하고라도 경도로 8°E~14.5°E의 범위에 들어있다. 이곳은 지중해를 낀 반도 이탈리아와 그 북쪽 지역이 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 지역은 유럽 조선인 셈이다. 이 지리적 문제가 풀어져야 역사의 본질을 풀어낼 수 있다.
  당 태종이 645년 10월에 고구려를 침입한 사건에서 안시성 전투로 무척 곤혹스러웠던 곳은 『삼국사』에 “蒲溝”[포구]인데, 『환단고기』에 적힌 “蒲吾渠”[포오거]를 보고도 위서僞書라고 한다면 어리석다. 왜냐하면,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권18에 나오는 지명이며, 이곳 ‘蒲溝=蒲吾渠’는 ‘Бог’를 음차한 것이고, “Bog/Boh”라고도 쓰는 보그 강[46°59′N 31°58′E]은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며 흑해로 들어가는데, 이 강물의 주변으로서 남쪽 지역에는 가을과 봄에 눈이 녹아 땅이 질퍽질퍽 진창[泥淖(니뇨)/Rasputitsa] 200리 길로 된다. 역사의 현장이며, 현재도 마찬가지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지역은 없다.
  조선사의 강역을 진실로 지리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한결같이 반도 3000리를 외친다. 이것은 세계질서 재편의 결과일 뿐이며, 역사에서는 이미 『고려사』 지리지 및 『성종실록』에도 “동서쪽 1만 리[輻員之廣幾於萬里]”라고 했다. ‘幾於’를 ‘거의’로 보면 ‘1만 리’에 가깝지만, ‘몇’으로 보면 ‘수만 리’에 이른다. 그래서 『환단고기』에서는 “동서쪽 2만 리東西二萬里”라고 했던 것도 오히려 축소 왜곡된 크기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까닭은 생뚱맞게도 일본이라는 왜국은 우리는 한결같이 극동아시아 일본렬도임에도 일본군이 청일전쟁을 하고, 유럽에서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하는 역사를 보면서 일본의 정체가 궁금한 데서부터 시작이다. 일본이라는 왜국은 그 남쪽에 난쟁이 나라[侏儒國], 벌거숭이 나라[裸國], 검은이빨 나라[黑齒國]가 있다고 하면서 『남사南史』와 『량서梁書』에서는 똑같이 동쪽의 해 뜨는 부상국에서 서쪽/서남쪽으로 3만 2000리에 왜국, 곧 일본이 있다고 했다. 단언코 이것은 서왜西倭라고 불러야겠다. 현재 동아시아의 끝에 있는 일본렬도의 남쪽에는 이런 나라들이 없다. 그 거리의 지역은 지중해 남쪽의 아프리카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보면, 고대부터 내려온 고려와 조선의 강역은 과히 지구전반구를 아우른다. 아시아 북쪽 지역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으로서 대서양과 아프리카만을 지나는 일식대를 백제 위덕왕(6년 윤5월)이 보았고, 조선의 세종대왕(20년 9월)도 보았고, 고종(12년 3월)도 보았다. 당연히 단군 부루扶婁 재위 58년(B.C.2183) 10월 초하루에 일식이 그곳에 있었다. 이를 두고 한국천문연구원에서는 “지구상에 日食이 있었으나 아시아지역에서는 관측할 수 없었음”이라거나, “아시아지역에 日食이 있었으나 조선에서는 관측할 수 없었음”이라고 했지만, 이 천문의 현상을 내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곳이 삼한의 마한이고, 백제의 땅이고 전라도였음을. (중략)
  그리고 지명으로는 변한의 불사국不斯國, 백제에 불사후弗斯侯, 『직방외기』에 불사弗沙, 『곤여만국지도』에 불사국佛沙國의 不斯‧弗斯‧弗沙‧佛沙가 모두 페스(Fés/Fez/Fas)의 음역이며, 그것이 모로코 북부이든, 튀니스都尼司이든, 변함없이 지중해 남쪽에 있다. 아프리카를 조선의 강역에서 제외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위서魏書』『해동역사海東繹史』 등에 나온 “백제가 소해小海의 남쪽에 있다”라는 ‘小海’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1909년(순종3) 8월 25일에 반포한 『해상충돌예방법海上衝突豫防法』 제9조2에 “摠積量二十噸未滿의 帆走漁船은 地中海及日本國竝韓國의 沿海에 在야"이란 법은 ‘지중해가 한국의 연안’임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 ‘小海’는 지중해와 흑해를 가리키므로, 그 남쪽이 백제였고, 그 북쪽이 고구려였다는 말이다.
  그리고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알게 된 특이한 사실 하나는 혈족의 가족관계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머리 풀고 통곡하는 거애擧哀가 있다. 졸저 『조선은 천자국 : 상제례 문화에서 본 한국』에서 상당한 내용을 밝혀냈지만, 이 책에서도 적힌 것인데, 장수왕 고련이 491년에 죽자, 고조高祖, 그가 제齊의 무제든, 북위의 효문제이든 거애했고; 문자왕 고운이 517년에 죽자, 북위 선무제의 비요, 효명제의 생모 령태후가; 영류왕 고건무가 642년에 죽자, 당 태종이; 백제의 무왕 부여장이 641년에 죽자, 당 태종이; 신라 진덕왕 김승만이 죽자, 당 고종이; 신문왕 김정명이 692년에 죽자, 측천무후가; 효명왕 김리홍이 702년에 죽자, 측천무후가 거애했다. 남북조의 조정과 당조의 황제들이 고구려‧백제‧신라 임금의 죽음에 거애했다는 것은 가족관계의 정치 구도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또한 매우 중요한 벼리이다.
  이러한 상례의를 치른 뒤에는 신주를 모시는 사당祠堂[廟]을 둔다. 임금[王]이라는 제후에게는 오묘五廟였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 곳곳에는 칠묘七廟, 구묘九廟가 나온다. 칠묘는 천자국이 행하는 제례제도임에도 구묘까지도 있으니, 이것은 무엇보다도 조선이 천자국이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이 또한 가족 중심의 관계로서 화목과 조상숭배의 의지가 배어있는 풍습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에는 절강병법으로 이름난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정부가 나서서 어렵사리 들여와서 왜적을 물리치는 일에 한몫하였다. 여기에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미세기 현상도 함께 적용했을 것이다. 충무공 리순신이 바다에서 싸움마다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의 하나에 미세기 현상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졸저 『미세기로 본 한국』에서 과학적 근거에 따라 나타나 있는데, 특히 절동조후표浙東潮候表와 서북조후표西北潮候表가 있다. ‘潮候조후’는 ‘미세기 - 밀물과 썰물[潮汐]’이다. 절동은 중국의 동남쪽 바닷가이며, 서북은 중국의 서북쪽 바닷가이다. 현재 중국의 서북쪽에는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이 있는 내륙이고, 중앙아시아의 중심 - 중원이기도 하므로, 그곳에는 바다도 없을뿐더러, 미세기 현상이 있을 수 없다. 그 중원에서 서북쪽 바닷가라면 유럽의 서북쪽 북해와 발틱해가 있는 곳이 되며, 바로 그곳이 서북조후표가 적용되는 지역이다. (중략)
  이곳의 가장 특이한 사실과 현상은 “직방지외職方之外”라면서 “일일칠조一日七潮”, 즉 ‘하루에 7번의 밀물이 든다’라는 것인데, 이 사실이 성해응成海應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도 실려 있으며, 그곳이 바로 영국과 덴마크 사이의 북해가 있는 네덜란드‧브뤼셀‧프랑스 바닷가에 일어나는 미세기 현상이다. 이 미세기 현상 하나만으로도 “중국/중원”의 위치는 지구전반구의 중심지가 되어야 하며, 현재의 대륙 중국과 반도 조선은 왜곡된 것이며, 현재 세계사 자체도 거짓임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해전海戰의 연구도 미세기를 빼지 않고 파고들면 한반도의 것과 거의 정반대의 대척지對蹠地임을 알 수 있다. 또 이미 『임진왜란시 광주양 해전 고찰』에서 지적한 바가 있지만, 1598년 10월 3일 밤 12시쯤에 왜군과 조명연합수군이 싸우면서 진린이 이끈 명수군 전투함 39척이 좌초되어 전투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지휘의 잘못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좌초’는 저조시라서 수심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물때를 보면 그날은 밀물의 고조시이며, 『기효신서』의 절동조후표로는 썰물의 저조시이다. 어느 것이 맞겠는가? 당연히 후자이다. 그곳 ‘절동浙東’은 실제로는 아프리카 동부 해안이라야 풀어진다. 미세기의 특성은 같은 장소, 같은 시각이면 매년 매월 아주 작은 오차범위 30분 정도 안에서 거의 같다는 원칙이 있다. 역사를 풀어내는 좋은 벼리이다.
  이러한 증거들에서 『26史』를 통해서 본 열전에 나온 조선을 보면서 그 정체는 실로 가감삭제로 변조의 극치를 보인 왜곡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사기史記』부터 ‘사기詐欺’로 만들어졌으니, E. H.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역사의 정체성을 자문자답하면서 현재의 역사 구도로 끌고 가려는 타협을 그렇게 종용했는가 보다. 역사의 본질보다 세계질서 재편에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여 조선 말살의 정치적 역학에 부응한 식민사관이 곧 『역사란 무엇인가?』의 핵심이다. 저명한 『웰스의 세계문화사』『동양문화사』『동양사대관』『동양사개론』『중국역사의 이해』 등을 보면 잘 엮어져 흠잡거나 책잡을 것이 없어 보인다. 『국사대관』『한국사신론』『한국의 역사』 등을 보아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선 사람들이 많으며, 식민사관의 틀을 들먹이며,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를 펴내어 상식의 꼬투리에 도전하고 있는 현실이다. 조금이라도 식민사관에 도전하면 재야사학이란 틀로 가두어버리는 실정이 서글프다.
  지금 이 『26史로 본 조선통사朝鮮通史』는 바로 그 비밀을 드러내는 마중물이다. 아주 졸렬한 고발 작품이지만, 처음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진실인 것으로 믿고 대동여지도 동해안에 실린 한문 12줄 388자를 번역하면서 중국대륙이 조선인 것으로 풀어 『대동여지도에서 낙타전쟁』을 상재한 바가 있다. 그뒤 사관은 발전하여 하멜 일행이 한반도에 발을 디딘 적이 없다며 네덜란드어 원문을 번역한 『새롭게 고쳐 쓴 하멜표류기』, 처음으로 고대조선의 강역이 천산을 넘어 지중해까지였음을 그림으로 제시한 영어 번역의 『프랑스 신부가 쓴 조선통사』, 조선은 한대‧온대‧열대가 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헝가리 민속학자 버라토시Baráthosi의 원문을 어렵게 구하여 번역한 『조선, 동틀 무렵 붉게 물든 나라』, 어렵기로 소문난 한문을 번역한 『산해경』과 『산해경의 비밀 읽기』, 누구나 봤음직한 『동의보감』에서 들춰낸 『동의보감에 숨겨진 조선 흔적』, 위서僞書의 경계를 허물며 번역한 『위대한 한국사의 비밀 환단고기』에서는 모두 상식을 뛰어넘는 언어들이 지구전반구 여기저기에 수두룩했다. 즐겨 마시는 차 한 잔에도 역사의 진실이 담겨 있음을 엮어낸 『조선을 바꾸는 힘 조선 그린 茶』에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보면 볼수록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충격을 받으면서 꾸준히 상식에 도전해온 결과물이다.
  “한국에서 지리는 국제 정치의 아버지이다.[In Korea, geography is the father of international politics.]”라는 폴 클라이드(Paul Hibbert Clyde)의 말을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조선의 강역을 지구전반구에 펼쳐 놓고서야 비로소 조선의 임금이 사이四夷(동이‧남만‧서융‧북적)를 정벌하고, 내쫓고, 가두고, 위엄을 보이고, 변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다스렸던 사실을 『조선왕조실록』 속에 잠자도록 방치하며 오해했던 일들이 바로잡히게 된다. 그동안 이런 사료를 얼마나 푸대접했던가.
  이 책의 구성은 중국정사中國正史에 엮인 26사에 기록된 조선 역사의 정체를 밝히기 위하여 장절을 임의로 정하고, 여러 부족국을 포함하였다. 제1부 고대조선 열국시대에는 『사기』『한서』의 조선전을, 제2부 삼한시대에는 『후한서』『삼국지』『晉書』의 동이전을, 제3부 삼국 시대에는 『송서』『남제서』『북제서』『량서』『陳書』『위서』『주서』『남사』『북사』『수서』『구당서』『신당서』『구오대사』『신오대사』를, 제4부 고려 시대에는 『송사』『료사』『금사』 『원사』『신원사』를, 제5부 조선 시대에는 『명사』『청사고』를 묶어 정리하였다. 물론 순서를 바꿔 『후한서』가 맨 먼저 나오며, 더 일찍 편찬된 『사기』가 뒤에 나온다. 글의 맥락이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꿰미로 엮고 보니, 서거정이 1481년에 지어 올린 『동국여지승람』 서문에 조선 ‘팔도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 경기도[四方之主曰京畿]’라는 것이나, ‘정서쪽에 황해도’라는 글이 한반도 지형에 전혀 맞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되었으며, 1817년에 집필을 끝낸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군현분예」에 제시된 12성[실제 13성]이 생각난다. 웬만한 사람은 다 보았을 책이지만, 누구도 질문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그냥 넘어 가버리는 것으로서 서울을 중심으로 동서쪽으로 다섯 개의 성省이 뻗어있음은 아무리 붙여보아도 한반도로서는 어울리지 않으며, 지구전반구에 갖다 놓고서야 비로소 그 배치가 완성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솔직한 다산의 지리구도였을 것이다. 다산 서거 100주년을 맞아 1938년에 『여유당전서』(154권 76책)을 기와집 35채값 3만 5000원을 들여서 간행한 것이 조선총독부와 일부 학술단체의 거창한 행사였고, 그 뒷면에는 조선사 왜곡의 완성을 축하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다산의 외현손 김성진金誠鎭 혼자서 어찌 편집할 수 있었겠는가. 그 출판사 이름이 “新朝鮮社신조선사”라는 의미가 새롭다. (중략)
  윤관의 척경비든, 목극등의 백두산 정계비는, 백두산 어디에 있느니 없느니 말도 많지만, 선춘령先春嶺에 있었다. 그곳 소리가, ‘奚關城’을 [훤잣]으로 읽듯이, ‘先春’을 반절법으로 읽으면, [ㅅ+ᅟᅲᆫ>슌]으로 곧 슌>사얀[Sayan/Soyonï]이니, 천산산맥의 사얀[49°N 89°E]에 있어야 옳다.
  Korea, “朝鮮조선”을 “Morning Calm”이라고 외국 사람들이 쓰며, 우리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며,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쓰고 있지만, 과연 알맞은 말일까? 내가 보기에는 역사 왜곡의 숨은 의도가 깔려있다. 그 본질을 찾자면, 『환단고기』에서는 “朝鮮=管境관경”이며, 그 뜻은 ‘봉토를 관리하다/나라를 다스린다’이며, 그 소리로 “됴션=죠션=조센=쵸센”으로 보아 서양 사람이 “Chosen”이라고도 쓰는 것은 ‘선택된 사람(Chosen)’의 나라라는 뜻이 아닐까. 이 ‘管境’을 뜻하는 ‘朝鮮‧珠申‧息愼’을 한꺼번에 음차한 ‘Chosen’이 차라리 조선의 정체를 대변하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선은 어떤 나라인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인종‧다민족‧다문화의 나라가 조선의 본질이며, 『선화봉사 고려도경』에서 말했듯이, 고려에는 여러 나라가 견아상제犬牙相制라 하였으니, 바로 ‘서로 뒤섞여 산다’라는 뜻이며, 이러한 생존 지형에서 종주국과 속국이 존재하여 주도권 싸움을 했던 큰 틀에서의 천자국이었고, 황제국을 두어 제후국[왕국]을 통치하였다.
  이제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가짜로 꾸몄다는 위서의 전형이고 야사野史로 외면했던 『환단고기』가 왜곡이 가장 적게 서술된 역사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가장 많이 왜곡된 것이 우리들이 많이도 보았고 정사正史로 대우하며 연구했던 『삼국사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책부원구』『자치통감』 등등이며, 조선총독부 및 규장각의 관인이 찍힌 모든 문헌은 모두 왜곡의 과정을 거친 것이라는 확인 표시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1부 고대조선 열국 시대’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내용이 소략한 것은 그만큼 역사가 축소 왜곡되어 없어진 것이며, 『남제서南齊書』열전39 등 사서들의 백제전百濟傳에 예닐곱 줄씩 및 한두 쪽[1쪽에 9줄]이 아예 통째로 “原闕”[원문 빠졌음]이라며 그 내용이 많이도 삭제되어 사실을 알 수 없게 되었듯이, 『환단고기』 등의 환인‧환웅‧단군의 나라를 복원해야 할 일이 남은 공간이다.
  역사 복원에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 시스템이다. 지금은 모두들 천자와 황제를 동일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분리해야 한다. 조정朝廷(政府)의 구분으로서 本朝본조에는 天朝천조, 皇朝황조, 中朝중조, 國朝국조를 쓰지만, 상황에 따라 天子천자, 皇帝황제, 王(國王)(임금)의 조정이며, 그 관청은  天府천부, 皇府황부, 王府왕부이며, 그들이 운용하는 군대도 天師천사, 皇師황사, 帝師제사, 王師왕사가 따로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무엇보다 남북조[420~581] 시대에 어떤 왕조에도 없는 “太祖‧高祖‧太宗‧世宗” 등의 묘호廟號로 쓰이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은 따로 중앙조정[龍庭]이 있었음을 나타낸 흔적이며, 진정 천자가 다스리는 천부天府(천자의 정부)의 역사가 빠진 것이다. 이것은 환인과 환웅의 역사를 지운 것만큼이나 조선사 말살의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다. 천자국은 중국으로서 모든 승인권과 임명권을, 황제국은 대국으로서 집행권을, 왕국은 소국의 제후국으로서 조공을 통한 울타리 역할의 보호권을 가지고 있었던 체제라고 본다. 이것은 『춘추좌씨전』의 소공昭公 30년(B.C.512)에 “예禮라는 것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보살펴 주는 것이며, 사대는 그때그때의 명령을 잘 받드는 것이요, 자소는 없어서 어려운 때를 도와주는 것이다.[禮也者 小事大大字小之謂 事大在共其時命 字小在恤其所無]”라는 체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자국과 제후국의 관계와 도리를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체제를 허물어버린 증거가 묘호와 시호와 존호의 명칭을 왕부王府와 천부天府 사이에 서로 올리고 내려주는 절차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 황제 신종神宗 주익균朱翊鈞의 존호 “神宗範天 … 顯皇帝”로 21자임에 비하여, 조선 임금 선조宣祖 리연李昖은 “宣祖昭敬 … 孝大王”으로 38자이다. 이 “宣祖”는 우리의 눈과 귀에 익었지만, 처음에 “宣宗”을 광해군 8년(1616)에 바꾼 것이다. 이 존호의 길이와 문장이 사실상 인물평이므로, 황제보다 대왕이 더 높은 자리이고, 더 훌륭하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조선왕조실록』에는 묘호[宣祖]보다 시호[昭敬]를 더 많이 썼으며, “諱”[휘]만 적고 바로 그 뒤에 이름을 거의 적지 않은 것에 ‘삼가며 꺼린다’를 고려하더라도 더욱 의심스럽다. 조선 임금의 존호에서 맨 앞의 묘호는 사실상 조선 천자국[中國]의 천자의 묘호이며, 그다음에 조선 임금[제후국]의 시호를 함께 붙여 섞어서 하나로 뭉뚱그려서 쓴 것이다. 『宣宗昭敬大王實錄선종소경대왕실록』이라 쓴 것부터 묘한 왜곡이다. 이름도 李昖리연과 李鈞리균이 있는데, 둘 다 덕흥군德興君 리초李岹의 셋째아들 하성군河城君이니 동일인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신종 황제의 이름이 주익균朱翊鈞(1563~1620)이라 이름자에 같은 ‘鈞’이 있다. 휘諱 개념에서는 쓸 수 없는 글자임에도 썼다는 것은 9살 어린 李鈞리균(1552~1608)이 실제 역사에서는 상위이고, 이미 같은 항렬의 손위로서, 선종/선조이며, 李昖리연이 소경왕임을 뜻한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의 성격은 엉성한 ‘중국사+조선사’이고, 『명실록』『청실록』은 묘호와 존호만 있고 시호는 없는 엉터리 ‘중국사’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한결같이 太祖태조, 太宗태종, 宣祖선조, 仁祖인조, 顯宗현종, 肅宗숙종, 景宗경종, 英祖영조를 천자의 묘호이므로 없애버리고, 오직 康獻王강헌왕, 恭定王공정왕, 昭敬王소경왕, 莊穆王장목왕, 莊恪王장각왕, 僖順王희순왕, 恪恭王각공왕, 莊順王장순왕 등 지방 제후국의 대왕大王으로 진실의 흔적이 남겨졌다.
  그리고 조선사의 거짓과 진실을 밝힘에 있어 누구보다도 그 깊이와 권위를 가지기 위하여 아예 『산해경』의 지리적 해석을 두고 박사학위논문 청구 심사 과정(2009.10.22.)에서 사료의 선택에 대해 ‘『산해경』은 아직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진위의 논란이 있고, 사학의 틀에서 벗어나며, 역사로서의 가치부여에 아직 부정적인 견해가 있다’라고 하는 심사위원들의 완곡한 결론은 결국 학위논문 제출을 스스로 포기하고 ‘조명연합군 연구’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다. 10년의 연구가 아쉽게도 물거품 되었지만, 그 연구성과가 조선을 밝혀내는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사실 『산해경』을 무시한 역사는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연구의 핵심가치는 그 책 「해내경海內經」 속의 첫머리에 ‘朝鮮’이 있으며, 그것은 곧 천하의 중심에 조선(중앙정부)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보고도 한반도 한국(조선)과의 관계를 엮어내지 못하는 것이 학계의 현주소이다.
  특히 여행꾼들이 종종 쓰는 말에 ‘아는 만큼 보고, 본 만큼 안다.’라는 말이 있다. 딱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지식의 깊이와 너비가 보고 보이는 것을 좌우한다. 그래도 한반도에만 갇혀 있겠는가? 다행히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고전번역원과 동북아역사넷에 번역문이 있어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했기에 고맙게 참고했으며, 나의 짧고 좁은 지식으로 버거운 번역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앞으로는 속고 살지 말자. 독자들께 숙제를 내는 것 같지만, 우리 모두 진실을 향해 역사에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역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도전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없다!

― 머리말 <역사의 벼리를 잡아채며> 중에서 


     - 차    례 - 

머리말 : 역사의 벼리를 잡아채며 
일러두기 

제4부 고려 시대 
송宋과의 관계  
정안국定安國  
발해渤海 
키타이[遼]와의 관계 
금金과의 관계 
원元과의 관계  
탐라耽羅 

제5부 조선 시대 
명明과의 관계  
청淸과의 관계 

발문  
참고문헌
 





[2022.07.01 발행. 601쪽. 정가 5천원(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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