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경 작가 응접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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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는 못 써도 김장은 일품이다/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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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숙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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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0건
조회: 6137 등록일: 2024-0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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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못 써도 김치는 일품이다.
김숙경(Stella)
"오늘 소설(小雪)인데 그곳도 추우냐? 김장은 했니? 어떻게 지내냐? 아프지 말어 " 오랜만에 엄마의 전화다. 아흔다섯이나 되시는 노모께서 아직도 목소리가 찌렁찌렁하다.
"응, 김장했어. 세 박스(30킬로)나 했어요" 자신도 대견했는지 목소리가 커진다.
엄마의 정다운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불끈 솟는다. 엄마는 캐나다에 이민 간 둘째 딸을 늘 그리워하신다고 한다. 나도 엄마가 늘 그립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더욱더 그립다.
김장하는 날도 엄마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엄마처럼 김장해 보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내가 한 김장은 배추 1박스(15통) 청무 1박스(큰 것으로 13개) 동치미 무 1박스(25개)를 미리 주문해 두었다. 김장철 해마다 한국슈퍼에서 교민을 위해 주문을 받아 김장용 배추와 무 등 부재료까지 충분히 준비해 놓는다. 한국산 천연 소금 대파 쪽파 갓 마늘 생강 젓갈류 고춧가루 등등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김장을 할 것만 같다. 김장철에는 풍성한 가을의 결실을 한껏 느낀다. 내가 김치를 잘 담는다고들 한다. 쉽게 맛나게 담는 비결을 엄마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신혼 초 나도 김치를 잘 못 담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신랑이 나박김치를 먹고 싶다고 하기에 나름대로 정성껏 배운 것을 잘 활용하여 담았는데 결과가 이상해졌다. 시원해야 할 물김치가 콧물처럼 끈적끈적 미끄덩거려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엄마에게 물었더니 대파를 넣었거나 조금 과하게 설탕을 넣었을 거라 한다. 그때 그 나박김치를 다 버리고는 김치 담는 것이 겁이 났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다시 도전했다. 시행착오 덕분에 난 어느 때보다 더 정성을 들여 김치를 담그게 되었고 어느 날 맛 난 나박김치를 담아 신랑이 흡족해하며 먹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흐뭇하고 기분이 좋았던지 모른다. 나의 지난날처럼 새내기 주부들이 격을 시행착오에 내 노하우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김치 잘 담그는 법을 알려 주고 싶다. 절대로 사 먹지 말고 손수 담아 주부의 긍지를 가족에게 심어주고 또 그 정성과 사랑을 음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행복이지 않겠는가? 행복은 생활 속에 작은 데서부터 오는 것이라 여긴다. 김치 하나 제대로 못 담그는 풋내기 새댁도 애 낳으면 엄마다. 엄마의 책임과 의무는 뭐니 뭐니 해도 가족 건강이 아니겠는가? 한국인 밥상에 최고의 반찬은 김치다. 주부는 누구보다 김치를 잘 담아야 가족들로부터 감사와 칭송을 받게 된다. 나는 시인이다. 호적(등단)도 올렸고 첫날밤도 치르고 아이(시집)도 가졌다. 그런데 난 아직도 시를 쓰기가 어렵고 힘들어진다. 스스로 생각해도 맛이 없는 시다. 꼭 신혼 초 풋내나는 김치 같은 시를 쓰고 있다. 잘 숙성된 알맞은 맛이 깃든 시를 쓰고 싶은데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내 주변의 친구들이나 아는 지인들은 좋다고 하지만 인사치레의 말이라 생각한다. 나 스스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점점 시의 맛을 알고 느끼고 볼 수 있는 경지에 오면 알 수 있듯이 내가 쓴 시는 아직 숙성되지 못한 풋내가 난다. 난 이 풋내를 제거하기 위해 선생님께 지도도 받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지만, 생각처럼 엄마의 맛깔스러운 손맛이 나질 않는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내가 김치 담을 때 시행착오를 겪은 이후 지금은 비법을 갖고 맛있는 엄마 솜씨를 닮은 김치를 담을 수 있듯이 시도 그리되리라 여긴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열심히 노력해 보련다. 그러다 보면 어릴 때 엄마가 끓여 준 된장찌개 같은 구수하고 맛깔스러운 시가 나오지 않겠는가? 지금 뚝배기에 멸치 다싯물로 우거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다. 보글보글 끓는 구수한 냄새가 침을 흘리게 한다. 내 시도 이렇게 침이 고일만한 향기로운 시이길 바란다. 먹으면 먹을수록 밥도둑이 될 만큼 맛난 찌개나 먹을수록 입에 감기는 김치 맛처럼 내 시가 그리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 끓인 우거지 된장찌개를 식탁에 올려놓고 식구들이 한 숟갈씩 뜬 후의 반응을 지켜본다. 시 한 편 써서 선생님께 보이기 바로 직전 기분이다. 오늘따라 떨림이 온다. 엄마 된장찌개가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다. 어릴 때 엄마표 된장찌개가 세상에 최고였던 그 맛이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 시도 정성과 사랑이 어우러져 곰삭은 맛으로 엄마표 된장찌개같이 되길 바라며,
2011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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