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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빛에 물들기 
천향미 시집 / 서정시학 刊

  소리에 대한 보고서를 전송한 후/ 내 귓속에는 날마다 환청이 한 뼘씩 자랐다/ 조율되지 않는 문장 하나 창문을 두드리다 갔다/ 컴컴한 골목을 지날 때/ 한 템포 느린 발자국 저녁을 미행했다/ 오늘은 고요를 핑계 삼아 잠을 청하는 동안/ 내리는 빗방울들 음계를 밟고 있다
― 천향미, 책머리글 <시인의 말> 중에서

  천향미 시인의 첫 시집『바다빛에 물들기』(서정시학, 2012)는, 선연하고도 심미적인 기억과 감각이 빚어낸 내밀한 자전적 고백의 기록이다. 시인은 일인칭 화자의 깊은 기억과 감각을 바탕으로 흔치 않은 진정성의 언어를 이어간다. 그 진정성의 언어는 보편적 생의 이법(평향)에 대한 잔잔한 성찰의 언어로 이어지면서, 일상의 눈으로는 간과하기 쉬운 어떤 근원적 질서에 대해 충실하게 사유하는 쪽으로 차츰 번져간다. 우리는 이 첫 시집에 담긴 시인의 이러한 언어와 사유를 통해, 그녀가 생애 내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내질과 감각의 밀도를 한꺼번에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알 듯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뭇 사물들은 우리 생명의 보금자리이자 갑옥이다. ‘보금자리'는 우리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삶의 터전을 말하지만，'감옥'은 우리의 심층적 욕망이 만들어낸 삶의 구조를 뜻한다. 서정시는 이 감옥을 부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감옥 안에서 감옥을 환히 밝히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새롭게 갱신하면서 생에 대한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중략)
  천향미 시편들은 언어의 심연 속에서 기억과 감각이 상호 공명하면서 그려내는 파동을 담고 있다. 그것은 사물 자체의 활달함을 극대화하려는 생각과 결합하여 아름다운 서정시편의 자양이 되고 있다. 이처럼 천향미 시편의 형상화 방법에는 선연한 기억과 심미적 감각이 깊이 잠복해 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번 시집을 읽는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선연한 기억과 심미적 감각을 통해 우리 삶의 불모성을 치유하고 새로운 소통 가능성을 꿈꾸는 것은 권장되어야 할 미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몸 안팎에서 지워진 가치들을 복원함으로써, 서정시가 가진 역설적 항체의 역할을 강렬하게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녀의 시 한편 한편에 서려 있는 정서의 실감이나 무게는 오롯한 개성을 담고 있다. 그녀의 시편들은 생의 활달함을 노래할 때에도 그 안에는 미세한 비애의 결이 숨쉬고 있고, 슬픔이나 통증을 담아낼 때에도 거기에는 구체적 삶의 사유 과정이 축약되어 있다. 그 점에서 천향미 시인의 시편들은 개별성과 보편성을 통합하고 있는 사례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는 그녀 시편들을 통해 서정시가 개인적 경험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보편적 생의 이법을 노래하는 양식 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선연한 기억과 감각으로 가 닿는 새로운 '중심'의 시세계를 보여준 그녀는 이제 어떤 세계를 지향해나갈 것인가. 그녀 시학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근원의 깊이를 담은 형이상학적 전율을 향해 떠날까, 아니면 사물의 구체성을 향해 심미적 행보를 이어갈까, 혹은 내적 감각의 섬세한 고백으로 흘러가게 될까. 우리로서는 심미적 감각과 형이상학적 충동이 매개되고 결속된 그녀만의 독특한 음색을 두 번째 시집에서 만나보고 싶다. 그러한 모습을 충분히 예견케 하는 이번 첫 시집을 축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해설 <선연한 기억과 감각으로 가 닿는 새로운 '중심'> 중에서

- 차    례 -

시인의 말

제1부
뿔  
왜가리
동해남부선 
빙하의 계절
계단을 오르며
불꽃밥상
부끄러운 오독 
반구대에서 
부부
반시 
초록의 그늘 
열반의 이파리
세탁기를 돌리며
허수아비

제2부
트릭아트
꽃의 유언
플러그 증후군
호모사피엔스를 추억하며 
롤러코스터
모노레일 
시간여행 1 
시간여행 2 
비토도 1 
비토도 2
다초점의 눈  
QR코드
들꽃축제 
소리재단사

제3부
늙은 가로수 
사이코패스
버블버블&매직쇼 
봄, 패러독스
난시亂視 
봄은 진정 여우로다
모자에 대한 담론
그림자를
캡처하다 
바다빛에 물들기 
투명 주의보
깡
골뱅이 
거미와 소녀 

제4부 
피터팬 증후군
크로키 기법으로 1
크로키 기법으로 2 
서명식
디오라마
매듭 
그대가 떠난 후
과속차선
하이힐 
오타에 대한 변주
흔들림도 키우고 싶을 때가
있다
벚꽃진다
이팝꽃 
당신이라는 말
항해사
징검다리

해설 | 선연한 기억과 감각으로 가 닿는 새로운 ‘중심’_유성호